재미있게 하던 일들도 더는 흥이 나지 않고 재미가 있다 한들 뭐가 달라질 것인가 … … 기대하는 것도 없으니 무기력하고 주변 일에 관심도 없고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 공허하고 울적한 기분 상태를 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울한 기분은 심각한 정신장애 증상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기분이라 가볍게 여기고 주변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당사자는 외롭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무력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극단적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극단적 선택도 개인의 권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극단적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데 감기야 쉬면 나을 수 있지만, 우울은 감기처럼 휴식을 한다고 해서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2016년도 국내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서 우울 장애의 1년 유병률은 1.5%(남 1.1%, 여 2.0%)로 우울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은 대략 61만 명으로 추산되었고 평생 유병률은 5.0%(남 3.0%, 여 6.9%)로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생 유병률이란 개인이 평생 동안 우울장애를 겪을 확률을 의미합니다.
우울장애의 진단
우울 장애는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흥미 상실, 식욕, 수면 변화, 피로, 자살 생각 등으로 일상생활이나 직업상 곤란을 겪을 때 진단될 수 있습니다.
아동의 경우에는 두통이나 복통과 같은 신체 증상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빈번하여 ‘신체 증상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질 수도 있고 청소년은 학업성적 저하, 비행, 신경성 식욕부진증, 분노 폭발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파괴적 기분조절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지기도 합니다. 또한, 노년층은 주의력, 기억력 장애 등 치매 증상과 유사하게 인지기능의 저하가 두드러져서 노년기 우울장애는 가성치매라고 불린 적도 있습니다.
우울장애 진단을 내리기 위한 DSM-5의 조건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1)번과 2)번 중 하나를 포함하여 총 5가지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어야 합니다.
1)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거의 하루 종일 지속함.
2) 흥미와 즐거움, 의욕의 저하
3) 수면장애: 불면증 혹은 수면 과다
4) 정신운동성 지체 혹은 불안·초조
5) 식욕의 변화: 식욕감퇴와 체중감소 혹은 식욕증가와 체중 증가
6) 에너지 저하(기력저하), 피로감
7) 부정적 자기개념: 자기 비난과 자책, 자기비하, 죄책감
8) 사고의 지연, 우유부단함, 집중력 저하
9)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반복적 사고
장애 관련 이론 및 원인
우울장애 증상은 매우 방대하므로 장애를 설명하는 이론은 대개 특정 상황에서 관찰되는 우울 장애나 우울장애의 특정 증상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개인의 증상에 따라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주로 언급되는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생물학적 설명
우울장애는 생물학적으로 뇌 안에서 작용하는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가바 등 신경전달물질과 갑상선 호르몬 등의 이상 혹은 생체 리듬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보며 내분비계 질환, 뇌졸중, 종양 등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이나 생체리듬의 변화는 특정 원인 의해 유발된 질병(physical defect)에 해당하고 우울한 기분은 질병의 결과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우울증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에서 거론되는 원인들은 엄밀히 원인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실직 후에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면 실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으므로 우울증의 원인은 스트레스고 스트레스에 의한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등은 질병에 해당하며 우울한 기분은 질병의 증상, 즉 결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직이 바로 우울 증상을 유발할 수 없다는 견해는 '정신(mind)'과 '신체(body)'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쌍생아 연구에서 우울증 발병에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우울장애와 관련하여 보고된 유전자 이상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2) 심리학적 이론:
낮은 자존감, 의존적 성향, 완벽주의 성향 등도 우울 장애에 취약하며 이러한 취약점이 큰 스트레스 사건이나 일상의 누적된 작은 스트레스를 계기로 우울장애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론적 관점에 따라 아래와 같은 작용 기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 정신분석 이론: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에서 기인하는 우울함에 초점을 맞추어 우울증을 ‘상실 및 애도의 실패’로 봅니다. 애도자는 상실 때문에 슬픔에 빠지게 되는데 이 슬픔은 망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분노를 자신과 망자를 동일시하면서 자신에 대한 분노로 전환하여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망자에 대한 분노는 나를 홀로 두고 떠나버린 것에 대한 원망일 수 있는데 망자를 원망하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우므로 망자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가 자신에 대한 분노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즉, 외부로 향해야 할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하면서 자기 비난, 죄책감, 후회 등이 포함된 우울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뿐만 아니라 이별, 목표 상실, 추진하던 일의 실패 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② 학습된 무력감 이론: 학습된 무력감은 우울 증상의 무기력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무력감에서 우울 증상이 기인한다는 설명입니다.
살아오면서 의지를 갖추고 시도했던 일들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무력함을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긍정적인 결과를 경험할 기회도 사라지므로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설명입니다.
③ 귀인 오류 이론: 귀인 오류는 개인이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우울장애 증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우울을 경험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실패’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이론으로 학습된 무력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떤 점을 원인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울 증상이 특수 상황에 국한될 수 있고 그 원인이 피로감, 기분 난조 등 일시적인 측면이냐 아니면 능력 부족과 같이 장기적인 측면의 것이냐에 따라 만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설명합니다.
④ 강화요인의 상실 이론: 행동주의적 관점의 이론으로 중요한 사람의 상실로 인하여 주변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원천이 사라졌으며 긍정적인 피드백의 결여로 강화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행동이 줄어들고 행동이 줄어들면 긍정적인 경험의 기회도 함께 줄어들고 그 결과 보람이나 즐거움을 느낄 일이 없으니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는 설명입니다. 우울의 발현보다는 우울 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악화하는 이유를 더 잘 설명해 줍니다.
⑤ 인지 오류 이론: 인지 오류 이론은 자기 자신, 주변 환경, 자신의 미래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사고에 의해 우울 증상이 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부정적인 관점에 의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그 결과 기분이 우울해지고 동시에 행동 역시 위축되면서 우울함이 악화한다는 것이 인지 오류 이론의 핵심입니다.
우울장애의 치료
치료적 개입은 우울장애 증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되지만, 우울 증상 중에서도 수면장애 및 식욕 장애 등 신체적 증상이 두드러진다면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 외에 우울증의 치료에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3가지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1) 긍정적인 활동을 늘리고 2) 사고의 오류를 수정하며 3)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활동이란 수행하면 기분이 나아질 활동으로 과거에 즐겁게 했지만, 현재 하지 않는 활동을 말하는데 ‘긍정적인 활동 목록’을 참고하여 찾으며 현재의 상태에서 수행하기에 너무 어렵지 않은 것을 선택해서 수행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활동은 대외적인 활동을 수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기회가 늘어나고 대외 활동이 늘어나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에피소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점검하여 기능적인 방향으로 조율한다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이런 과정을 사고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능적이란 개인이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하고 역으로 원하는 것을 저해하는 것들은 역기능적이라고 말합니다.
사회기술훈련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원만히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좀 더 수월히 맺을 수 있도록 사회기술을 개선하는 연습을 말합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다른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으므로 필요하면 사회기술 훈련을 치료과정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수정의 대상이 되는 사고의 오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특정 사건을 해석한 내용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입니다.
사건을 해석한 내용은 ‘자동적 사고’ 혹은 ‘반사적 사고’라 부르기도 하고 사건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시각은 ‘인지 도식’, ‘핵심신념’, ‘인지쉐마’, ‘스키머’라고도 합니다. 인지 도식은 ‘세상은 불공평하다.’ ‘난 인생의 실패자.’ ‘사람은 절대 믿지 마라’와 같이 자신과 외부세계에 대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확신과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를 싫어할 것이다.’와 같은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자를 보냈는데 답신이 없을 때 “내 문자를 씹어!”라는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 문자를 씹어’는 자동적 사고에 해당하고 아마도 그 결과는 분노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에 답신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내 문자를 씹어’라고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내 문자를 씹어’라고 반응하면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무시당하는 것에 민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동적 사고가 ‘내 문자를 씹어’라면 이런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 도식에는 아마도 “무시당하면 안 된다.” “내 말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나를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는 자동적 사고와 인지 도식의 내용이 사실에 들어맞는 것인지, 객관성이 있는지 등의 여부를 살펴보게 됩니다.
인지도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사건의 사실성을 확인하게 되는데 트라우마 경험도 함께 다룰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다루면서 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의 경험을 자신의 앞에 놓인 새로운 삶, 새로운 목표의 동력으로 삼으면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상실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인지 도식이 유연해질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적절히 유지할 때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명제를 깔고 있기는 하지만, 혼자서 지내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교류를 하면서 지내는 것이 우울증에 빠져드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류를 원하지만, 교류가 없는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사회기술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이에 관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울장애를 누구나 겪을 수 있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힘들 때는 혼자 괴로워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통을 나누면 고통을 공유하는 만큼 함께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므로 고통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모두의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